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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도 배운다.
2003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우리는 태국 푸켓으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그때 내 나이 33살이었다. 당연 처음 하는 해외여행이었다. 즐거운 신혼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4년이 넘어 흘렀다. 그날 이후로 우리 부부는 여권을 서랍 깊숙한 곳에서 다시 꺼집어 내 사용할 일이 없었다. 출근해서 일하고, 아이가 태어났고, 출근해서 일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출근해서 일하고,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그리고 14년이 지나서 아들은 중1이 되었다. 여름 휴가철이면 간단히 가까운 바닷가나 계곡으로 놀러 가는 평범한 휴가를 보냈다. 열심히 살았다. 8년의 직장생활을 했고, 지겹고 지겨웠던 직장을 퇴사하고, 나는 목수가 되었다. 직장에서 일을 못했던것은 아니었다. 연말에는 상도 받고, ..
명절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추석은 역대급으로 긴 연휴다. 무려 10일이다. 추석의 앞으로도 길고 추석 당일의 뒤로도 제법 길다.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요즘 시절에는 잘 쓰지도 않고 의미도 퇴색한 말이 되었다. 예전 농경시대에나 실감할 수 있는 말일것이다. 먹을 것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가을 추수를 통해 새로운 곡식과 과일 등을 거두어 조상에 제사를 올리고 그 음식을 나누어 먹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이 차례를 언제부터 이렇게 지냈을까?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의 아주 오래전 부터 아닐까?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불과 몇십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아버지는 1940년 생이..
나의 소박한(?) 글쓰기 작업환경 사실 특별히 글다운 글을 쓰는 일도 없지만 가끔은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 따위의 허영심을 갖고는 한다. 집에는 100% 와이프 전용의 PC가 1대 있다. 그리고 절대권력자인 그녀는 역시나 전용 노트북(하지만 20만원대의 초저가)도 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내 아들이기도 한데)은 올해초 뭔가를 잘했다고(뭘 잘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아빠라는 존재는 이래서 대접을 못받는 것이리라) 아이패드 프로(ipad pro)12인치 태블릿을 전용으로 사용한다. 애플펜슬로 폼나게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하고 잘 논다. 부럽다. 그리고 1대의 컴퓨터가 더 있는데, 코딩을 하는데는 맥이 편하고 여러모로 좋다고 해서 거실에 아이맥이(iMac) 하나 있다. 내가 주로 사용한다. 열심히 코딩을 ..
택배를 받는 날은 기분이 좋다. 하루 종일 택배 아저씨를 기다린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사고 싶은 물건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고 나면 물건이 도착하기 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고역이면서도 즐거운 일이다. 전에 사용하던 블루투스 키보드가 고장났다. 폴더형 키보드였는데 중간 접히는 연결부분이 부러져버렸다. 그래서 며칠전 새로 키보드를 구입했다. 카넥스라는 키보드이다. 모양이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약간 v자 형태이다. 손목이 덜꺾여 편하긴 한데 아직은 약간 어색하다. 적응하려면 며칠 시간이 걸리겠다. 키감은 깊은 편이다. 테스크탑으로 사용하는 아이맥(iMac)외에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며 글을 작성할 경우 스크린키보는 불편하고 오타가 많이 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블루투스 키보드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글을 썼다..
한참동안 티스토리에 들어와보지 않았다. 요즘은 많은 SNS 가 나와 예전만큼 블로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줄어든듯 하다. 나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스토리,밴드 등등. 이런 저런 SNS를 돌아보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주로 피드에 올라온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간혹 댓글을 달고 팔로우를 하고, 친구추가 요청을 한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내 글을 써 본지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 올리는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글이 너무 휘발성이다. 블로그처럼 글이 카테고리별로 정리 할 수도 없고,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도 힘들다. 장점이라면 빠르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슈가 되면 정말 빠르게 확산 된다. 너도 나도 공유를 해대는 바람에 페이스북 피드를 내려가며 ..
거실 창문에 준서랑 그렸던 그림이 사진으로 남아 있네요. 오기사(오영욱)님 그림을 흉내 내 봤는데... 하여간 유리창에 준서 엄마의 묵인하에 낙서를 해서 즐거웠다.
만6살짜리 아들 녀석이 적어준 생일 축하카드 입니다.ㅋㅋ A4두장을 붙여 만들었구요. (왼편에는 생일케익이 그려져 있었구요) 철자는 좀 틀린곳이 있지만... 대강 아빠 생일 축하해~, 선물은 없어, 무라카미하루키가 돼봐~ 뭐 이런 내용인듯.... 아들 보는 앞에서 하루키 책만 너무 읽었나보네요 ㅋㅋ.. 위대한 우리 마누라가 1Q84 3권을 예매해 주었다. ㅋㅋ
영화제목이기도 하고 얼음과자를 예전에는 주로 이렇게 많이들 불렀다. 지금은 아이스크림, 아이스바라고들 많이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아이스케키로 많이 통했다. 또 한가지는 어린시절 머슴애들이 여자 아이들을 놀리며 노는 놀이중의 하나인 고무줄끊기와 쌍벽을 이루는 치마들추기 놀이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 놀이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다른 놀이에 열중하고 있거나 걸어가고 있는 여자아이의 뒤로 몰래 들키지 않도록 접근한다. 치마를 들추며 "아이스케키"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 놀이의 희생자가 된 여자 아이는 "꺄~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다른 사람들이 봤을까봐 부끄러워 횡하니 도망가거나 째려보거나 아니면 달려와 남자애를 때려주거나 아니면 눈물을 흘리며 마무리 된다. 희생자의 반응은 각자 성격이나 판단에 따라 달라진..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을때....그때가 1987년이었다. 나는 시골에서 살고 있었고..학교는 마산의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되었다. 매일 아침이면 6시가 되기전에 일어나 시골빨간 버스가 오는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빨간버스를 타고 마산시내로 나간다음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학교 등교를 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면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온다음... 또다시 시골로 가는 빨간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시작했다. 빨간 버스를 타는곳까지 대략 4km남짓 된다. 1학년 첫입학후 얼마되지 않아 모든 식구가 늦잠을 자버렸다. 아침도 못먹고 대강 옷만 챙겨입고 아버지와 나는 버스가 오는곳으로달려갔다..물론 도시락도 못싸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내가 목공소나 작업실에 들어온거 같다. 매일매일 집은 작업실 분위기다.....OTL 이번에는 한쪽 벽이 통째로 바뀌었다...목공소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리고 마누라로 부터 새로 하사받은(?) 나의 미니책장... 원래의 책장은 아들에게 빼앗기고... 내집인데 아들과 집사람이 모두 점령하고...나는 누워 잘 자리정도 밖에 엄따..ㅠㅠ 그리고 여기 저기 매일 뭐를 만들어 쌓아 둔다....(준서엄마의 짓) 엄청나게 많이 쌓아둔다.... 나는 잘 모르는데 지붕처럼 달아두는게 어닝 이라고 한다나? 저거 달아주는라 벽에 드릴로 구멍 뚫고 못 박고...하여간에... 내가 싫어하는 풀들(식물)...이상하게 나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잘 자란다.... 무서운 준서엄마의 작업도구들...붓,물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