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오늘도 배운다.
더 이상 즐겁지만 않은 명절 추석 본문
명절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추석은 역대급으로 긴 연휴다. 무려 10일이다.
추석의 앞으로도 길고 추석 당일의 뒤로도 제법 길다.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요즘 시절에는 잘 쓰지도 않고 의미도 퇴색한 말이 되었다. 예전 농경시대에나 실감할 수 있는 말일것이다.
먹을 것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가을 추수를 통해 새로운 곡식과 과일 등을 거두어 조상에 제사를 올리고 그 음식을 나누어 먹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이 차례를 언제부터 이렇게 지냈을까?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의 아주 오래전 부터 아닐까?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불과 몇십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아버지는 1940년 생이다. 아버지는 내게 아주 가끔 말했다. 어린 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거의 매일 고구마를 먹거나 산에서 나물이 될만한것과 쌀을 조금 넣고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고 했다. 그런 시절에 지금과 같은 상차림의 제사를 지낼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일제강점기. 더 생각해 볼것도 없을거 같다. 농사 지은 모든 곡식은 수탈을 당했는데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무슨 차례를 제대로 지낼수 있었을까!
큰 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말에는 농사지은 모든 쌀을 일본놈들이 가져갔다고 했다. 조선말은 어땠을까 일반 평민이나 소작농들이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낼수 있었을까? 아마도 먹고 살만한 지주들이나 양반, 또는 거상들이나 제사를 지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안봐도 뻔한것 아닌가! 물론 제사를 지낼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런 풍성한 상차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밥과 탕 생선 구할수 있는 과일 나물 정도의 간소한 젯상이라면 그나마 괜찮은 젯상이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지내는 차례의 젯상은 6.25 전쟁이 끝나고 한참 지나 1970년대의 산업화가 이루지는 시기부터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정권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해왔다는 식으로 알려진 홍동백서니 하는 것들은 예전에는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주 근래에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가례례라고만 하였던 것이다. 말그대로 집집마다 다른 것이다고 해석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때는 조금 즐거운 기억도 있다. 오랜만에 친척들 가까운 사촌들과 만나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도 있다. 하지만 산업은 더욱 발전하고 핵가족화 되었고 지금은 1인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시절이 되었다. 명절이 되면 멀리 나가 있는 자식들은 하루종일 차를 몰아서 고향으로 힘들게 내려오고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장만한다.
아침 일찍 차례상을 차려 제를 올리고 산소에 성묘를 하고, 그 다음은 부랴부랴 돌아가기 바쁘다. 연휴가 얼마나 긴지는 상관없다. 얼른 올라가서 정리하고 쉬고 싶은 것이다.
고향에 내려와서 하는 이야기는 오는 동안 얼마나 차가 밀렸는지 또 올라갈 걱정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중학생 정도만 되면 시험기간이고 공부를 해야된다는 이유로 더 이상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내려오지 않는다. 1년에 많아야 두번 정도 보는 친척들이 낯설기만 할것이다. 대학생정도의 젊은이들도 이런 행사를 해마다 해야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든 시절이 되었지만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추석 하루전이 되면 방송에서는 귀성길을 교통상황을 전하는 뉴스를 하루 종일 할것이다. 전년에 비해 막힌다. 평년보다 여유가 있다는 둥 그런 하나마나 한 뉴스를 내보낼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명절 증후군에 관한 기사도 연휴 막바지에 여기저기서 나올 것이다. 올라가는 자식들을 위해 음식을 한보따리씩 챙겨주는 모습도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마다 버려진 명절음식들로 쓰레기장이 넘쳐나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을 우리는 접한다. 예전 못먹던 시절의 보모세대가 아직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한것이다. 지금은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예전의 제사 음식이 이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부모님들은 알면서도 빈손으로 보내기 서운하여 늘 그렇게 하며 아쉬움을 달래는지도 모른다.
차례를 다 지냈으며 이제는 처가로 이동할 차례이다. 요즘은 한해는 시가 먼저 그 다음은 친정 먼저 가는 경우도 늘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아예 차례는 지내지 않고 해외로 또는 제주도나 여러 여행지로 가족여행을 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당연히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그럴것이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기독교가 아닌 집들도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차라리 가족 여행이나 간단히 모여 외식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즐거워야 하는 명절이 여자들에게는 즐겁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음식을 해야하고, 모인 식구들의 끼니를 차려내고 연이어 설거지를 해야하고 거기다 화가 나는 것은 남자들은 그저 앉아서 술이나 마시고 차려주는 밥만 먹으며 빈둥거려도 되는 것이 답답하고 억울한 노릇이리라. 그녀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오빠와 남동생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해온 것이지만 이제는 그런것이 더 이상 참아내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바리바리 챙겨주는 음식을 싣고 친정으로 달려가봐야 친정의 남자 형제들은 각자 그들의 처가로 갔으니 여자 형제들과 그들의 남편들만 모여 있는 것이다.
간혹 이런 말을 하는 여자들은 보았다.
친정에 도착해서 자신의 엄마에게 “올캐는 벌써 갔어?” 생각해 보라!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되는것 아닌가? 벌써 친정에 도착한건 자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명절 후에 이혼하는 가정이 늘어난다는 뉴스도 우리는 접하곤 한다.
이런 문제를 야기시키는 명절이라면 없는것만 못하다. 마냥 전통이라고 무조건 하던 대로 계속해야 한다는것도 무리이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여자들과 그 힘든 여자들을 보며 맘편치 못하고 눈치를 보는 남자들도 힘들다.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2~30년 내에는 지금 같은 명절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두서 없는 긴글이 되었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모두 스트레스 덜 받는 명절 보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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