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우리는 태국 푸켓으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그때 내 나이 33살이었다. 당연 처음 하는 해외여행이었다. 즐거운 신혼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4년이 넘어 흘렀다. 그날 이후로 우리 부부는 여권을 서랍 깊숙한 곳에서 다시 꺼집어 내 사용할 일이 없었다. 출근해서 일하고, 아이가 태어났고, 출근해서 일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출근해서 일하고,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그리고 14년이 지나서 아들은 중1이 되었다.
여름 휴가철이면 간단히 가까운 바닷가나 계곡으로 놀러 가는 평범한 휴가를 보냈다.
열심히 살았다. 8년의 직장생활을 했고, 지겹고 지겨웠던 직장을 퇴사하고, 나는 목수가 되었다. 직장에서 일을 못했던것은 아니었다. 연말에는 상도 받고, 덕분에 일은 많이 했다. 늦게 퇴근했고, 퇴근후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마시는 일도 지겹고 힘들었다. 흔히 사회생활이라고 하지만, 그 회식이 그 회식이다. 그런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는 그전. 회식에서 나온 이야기랑 별반 다른게 없다. 우리가 남이가를 반복하는 그런 대화, 잘해보자! 뭐 그런 주입식 교육을 술을 마시며 하는 것이다.
지겨웠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3번째 사직서를 들고 갔을때는 더는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얼마후 우연히 원목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되었다. 가구를 만드는 것을 배우는 일은 재미있었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만 하다가 몸을 쓰며 하는 일을 하는 순간 새로운 느낌이었고 신기하고 즐거웠다. 내 손에서 가구가 만들어져 나와 누군가가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 내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어 내는 즐거움에 빠져 나는 주문이 없어도 인터넷에서 예쁜 가구를 보면 팔릴지도 알수 없는 가구를 만들어 보며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처음에는 팔로를 못찾아 많이 힘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게 되면 일정하지 못한 수입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월급생활을 할 때는 많든 적든 매달 일정한 수입이 예상되고 그에 맞는 지출을 할 수 있지만, 장사는 그런 계획이 마음 같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많이 팔고 싶다고 팔아지는 것도 아니고, 반면 기대하지 않은 많은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 일관된 계획이 힘들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여름에는 더워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이 힘들었고, 겨울에는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일을 했다. 그렇게 뒤도 안돌아 보고 한달 한달 살아가기 위해 나와 아내는 열심히 일하며 달려왔다.
올해 3월 나는 종합검진을 했고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특별히 몸이 아픈적도 없었고, 살이 빠지지도 않았고, 식욕이 떨어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만, 전과 다른 변화가 하나 있었다면 배변습관이 달라진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변비였다가 어떤 때는 설사가 있었다. 간혹 소화가 안되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이 있다면 위와 같은 증상이 있다면 바로 병원으로 가보시기 바란다. 변에서 혈변이 나오면 많이 늦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병기가 중기라고 했다.
2기에서 3기를 넘어가는 사이라고 했다.
나는 4월초에 수술을 했다. 20센치정도의 대장을 절재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임파선을 잘라냈다.
다행히 전이가 된 곳은 없는 걸로 나왔다. 그리고 수술 이때까지 나는 방사선 치료를 주5회씩 해서 총28회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항암치료를 2주에 한번 간격으로 7회까지 받았다. 8회까지 받아야 한다. 이제 1번이 남았다.
큰 병이 걸리고 수술을 받고 나서 그 동안 치료를 받아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너무 일만 해왔다.
가족들과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즐겁게 지내왔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더 많이 같이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거거에 맞는 범위 안에서 같이 외식도 많이 하고, 영화도 같이 보고, 야구도 자주 보러 가고, 계획을 세워 여행도 하고, 쇼핑도 하러 다니고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