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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김영하

아무튼씨 2020. 3. 2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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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소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요하고 싶을 때,
예기치 못한 마주침과 깨달음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 
그리하여 매 순간, 우리는 여행을 소망한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작가 김영하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한국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tvN에서 방영한 '알쓸신잡'에 출연하여 방대한 지식과 입담을 자랑했다. 김영하 작가의 책을 제법 읽었다. 살인자의 기억법, 오직 두 사람, 산문 보다, 읽다, 말하다, 랄랄라 하우스 등.
내가 한때 좋아했던 소설가 박민규 다음으로 많이 읽은거 같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소설보다 산문이 좋았다.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8개의 에피소드로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굳이 내용을 여기서 상세히 적지는 않겠다. 대한민국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니 그의 필력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글의 첫머리에 적어 놓은 책의 뒤표지에 적힌 저 문장이 다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설명 다 필요없고 '일상의 부재' 이것으로 여행의 목적과 이유가 모두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왜 그토록 여행을 하고 싶어 하고 여행을 고파하는가? 글 쓰는 플랫폼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 중에 많은 소재가 퇴사하고 싶다는 이야기, 퇴사했다는 이야기, 퇴사하고 한 달간 해외로 장기 여행을 가겠다는 이야기, 한 달간 장기 여행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 마치 퇴사와 여행은 별책 부록 아니면 마트에서 하는 1+1 행사처럼 세트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긋지긋한 일상과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 지금 이곳이 아닌 전혀 낯선 세상으로 뛰어 들고 싶은 욕구의 글들이 넘쳐난다. 
매일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힘겹게 일어난다. 어제의 야근으로 인한 과로와 상사와 동료들과 부대낀 심적 스트레스와 그것들을 떨쳐내기 위한 과음의 여파를 그대로 몸에 입은 채 침대에서 가까스로 몸을 떼어 낸다. 자가용이 없다면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가야 하는 대중교통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점심은 뭘 먹지 매일 해야 하는 고민도 지겹다. 선택지는 회사 근처에서 골라야 하니 일주일 내내 돌려 가며 먹어도 ㅅㅇ신세계를 만나기는 애초에 걸러 먹었다. 열심히 일하기 위해 커피도 마시고 몸에도 안 좋은 담배도 피워가며 견뎌낸다. 그나마 퇴근 시간이 오면 즐겁긴 하지만 깊숙한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아! 내일도 또 이렇게 보내야 하나 하는 탄식이 가슴 깊이 망치질 한다.  답답하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봐야 돈은 생각만큼 벌어지지 않는다. 월급날은 돈이 들어오는 날이 아니고 나갈 것들이 나가는 날이다. 나가야 할 돈들이 빠져나간 통장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대한민국에서 언제쯤 내 집 한 칸 마련하나 생각해 보면 마치 국어국문학과인 내 앞에 미분방정식 시험문제가 놓인 것 마냥 아득하다. 집에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서 넷플릭스 영화 한 편 보며 우울한 기분을 날려 보기로 한다. 막상 보려고 하면 그 수많은 것들 중에 어떤 것을 봐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일이다. 책을 읽어 볼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썩 내키지는 않는다. 이미 자기 개발서 같은 책은 너무 많이 읽어서 꽂아둔 책장이 활처럼 휠 지경이니까. 뭐 어쨌든 잠은 든다. 그리고 여지없이 알람은 울리고 힘들게 침대와 이별하는 매일매일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것은 일상이다.

여행은 이 지긋지긋한 일상을 제거해 준다. 직장생활도 하고 일도 병행해야 하는 가정주부라면 여행이라는 것은 꿈꾸는 것이 당연할 것 같다. 일상이 없어진 세상. 패키지 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이라면 더더욱 멋지다. 제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조식이 제공되는 호텔에서 아침을 맞이한다면 더 좋다. 개운하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설거지 걱정도 접어두어도 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텔을 나서 여행을 오기 전 가보면 좋은 추천 스팟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며 멋진 거리를 감상하면 된다. 상사에게 제출해야 할 보고서도 없고, 꼴 보기 싫은 직장 동료도 없고,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후배도 없다. 경치 좋은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일상의 부재를 만끽하는 것 그것이 여행 아니겠는가!

여행에서 가장 극적으로 즐거운 순간은 뭐니뭐니 해도 여행 계획을 세우는 순간이다. 일상의 부재를 꿈꾸며 항공편을 알아보고 숙소를 검색해서 예약하고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을 수첩과 스마트폰에 기록해 둔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핫스팟을 알아보고 어떤 각도로 어떤 포즈로 찍으면 좋을지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해시태그로 찾아보며 즐거워하는 그 순간들...

그래서 나는 매일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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