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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도 배운다.
나는 머리가 벗겨진 전직 대통령과 입만 열면 '이 사랑 보통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대통령 둘 다 싫었다. 둘 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육군의 장군이었고, 차례로 대통령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광주에서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건 누구나 다 안다. 이것만으로도 미운 그들은 미워할 만한 짓을 많이 했다. 명색이 장군이었고 대통령인 사람들이 양아치 짓을 했다. 대머리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있었던 일중에 금강산댐에 관한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제는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 흐릿해졌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대머리 장권의 정부는 연일 텔레비전에서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들어 수공을 계획하고 있다고 떠들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어머어마하게 거대한 댐을 건설하고..
예전에는 제법 책을 읽은듯하고 얼마 전에는 그나마 조금은 읽은 듯하고 요즘은 책을 전혀 읽지 않고(못하고) 있다. 책이라는 것은 글을 쓰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글을 쓰는 인간들은 아마도 자신의 몸에 새겨진 주름들을 그대로 똑같이 종이 위에 필사하고, 또 베껴 써서 남기려는 존재들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죽고 나면 썩어서 없어질 몸뚱이 위의 주름을 책에 한 줄 한 줄 그대로 옮겨서 자신의 주름을 잊히지 않게 하고 싶거나, 자신의 주름의 모양이나 혹은 어떻게 주름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인간, 아니면 주름을 종이 위에 쏟아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존재들 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대학 시절 시험기간에 가끔 가보던 그 도서관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오늘부터 100일간 매일 글쓰기에 도전하려고 한다. Day 1 나에게는 무모한 도전이다. 브런치에 가입한 이후 처음 몇 번 글을 쓰고는 이후에는 흐지부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거의 잊어먹고 있었다. 갑자기 100일간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에 마음먹고 도전해 보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근래에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바꾸고 싶어서이다. 세 번째는 나라는 인간은 나이 50이 넘도록 도전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00일간 글쓰기 도전에 몇 가지 원칙을 정해두어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 같다. 1. 잘 쓰려고 애쓰지 말자. (나는 전문 작가가 아니므로 당연하다) 2. 너무 긴 시간을 들이지 말자. (다..
펜의 몸체 안에 잉크를 저장하는 통이 들어있는 필기도구를 만년필이라고 한다. 나무위키에 보니까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올라간다. 현대식 만년필은 1884년 미국의 루이스 워터맨이 모세관 현상을 이용한 만년필을 발명하였다고 한다. 이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뭐 대체로 만년필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볼펜이 대중화되었고 아주 다양한 필기구가 나온 요즘에는 만년필의 사용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만년필 특유의 필기감과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잉크의 리필이나 카트리지의 구매가 번거롭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임에도 불구하고 만년필을 사랑한다. 그리고 잉크의 점성이 낮아 볼펜처럼 잉크가 뭉치거나 하지 않아 손에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만년필은 아주..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소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요하고 싶을 때, 예기치 못한 마주침과 깨달음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 그리하여 매 순간, 우리는 여행을 소망한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작가 김영하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한국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tvN에서 방영한 '알쓸신잡'에 출연하여 방대한 지식과 입담을 자랑했다. 김영하 작가의 책을 제법 읽었다. 살인자의 기억법, 오직 두 사람, 산문 보다, 읽다, 말하다, 랄랄라 하우스 등. 내가 한때 좋아했던 소설가 박민규 다음으로 많이 읽은거 같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소설보다 산문이 좋았다.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8개의 에피소드로 각각의 이야기를..
와이프는 불교신자다.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다. 6년 연애를 했는데 결혼하고 알았다. 결혼하고 한 달쯤 지나 와이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는 스님이 와서 염불을 하고, 하여간 불교를 신앙으로 하는 집안의 흔한 장례식 이었지만 종교가 없는 내게는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다. 원래 나는 2~30대에는 무신론자였다. 나이가 더 들면서 신이라는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신이 있을 수도 있지만 종교를 가지지는 않기로 했다. 어떤 종교든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고 권리이니까. 다만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을 자유를 얻으면 그뿐이다. 아내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절에 간다. 주로 통도사..